어릴 때 고전을 많이 읽은 편이 아니다. '고전은 어릴 때 읽어야 진가를 발휘한다'라는 류의 말을 들은 적 있다. '사이비 인문 전도 서적'에서 본 건 아니고 꽤나 믿음 가는 사람의 말로 기억한다. 같은 고전을 읽어도 감동의 크기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일게다.
최근에 나오는 책들에 비해 고전은 읽는 데 꽤 많은 힘이 든다. 쓰인 지 오래됐다는 것도 큰 요인이지만, 대부분 고전이라 불리는 외국 서적들은 결국 번역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한 문장을 읽으면 한번에 머리에서 소화되지 않는다.
그래도 고전을 골라 읽는 데에는 대개 어떤 특별한 동기가 생겼기 때문이다. 상당 경우는 지인의 '비의도적 추천'이 동기가 된다. 커피를 마시든, 술을 한 잔 하든 어느 순간 고전 한 편을 설명하며 자기를 표현하는 이들이 있다. 이때 시니컬한 종자인 나는 살짝 낯가지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선 나름 철학 전공자로서 '쓸모없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 대한 호감을 느낀다.
긴 시간을 이겨낸 레퍼런스를 거울 삼아 자신의 태도나 삶을 표현하려 하는 그 고상함. 어느 어린 때 교과서를 통해 읽었던 수필 '딸깍발이'가 독자에게 주고자 했던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여튼 그런 부질없는 감동에 취해 고전을 집어든다. '데미안'도 그렇게 고른 책이다.
"새는 힘겹게 투쟁하여 알에서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도전 골든벨'에 문제로 나왔던 문장으로 기억한다. '이 문장이 나오는 소설의 제목은?' 정도였을 것 같다. 이런 식의 선견이 있기에 이 문장이 당대에 전했을 감동을 나는 느낄 수 없다. 오직 교복을 입은 애들이 모자를 뒤집어 쓰고 화이트보드를 들어올리는 모습을 함께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거기에 감상을 하나 더 하자면, 아마 내게 이 책을 집도록 한 '부질없는 감동'을 불러일으킨 자는 이 문장을 '청춘의 문장'으로 가슴 깊이 새기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 정도다. 아니, 추측이 아니라 확신이다.
"우리가 어떤 인간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지.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것은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이런 문장이 '데미안'에 나온다. '뭐 눈에 뭐만 보인다'와 맥이 통하는 이야기 같다. 이런 문장은 미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성찰에서 나오는 것 같다. 나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으려는 것.
만약 이 문장이 참이라고 하더라도, 이 문장이 담은 내용을 안다고 해서 미움을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항상 감정은 이성을 앞지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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